은교예찬


내가 만약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배치했을 것이다.
-아나톨 프랑스 (19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영화 <은교>스틸


신윤복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작은 어깨, 가는 발목, 가는 목, 그보다 가느다란 눈꼬리, 그 안의 묘한 삼백안. 늙은 야누스에 안긴 싱그러운 청춘의 관능미에 가슴이 뛰었다. 실로 오랜만이다.

불멸에 대한 갈망과 존재론적 슬픔이 맞물린 인류의 수수께끼는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불로장생의 약이 시판되지 않는 이상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젊음을 탐하는 노년을 게걸스럽지 않게 그린 것에 대한 고마움이 있다.


by NoiR-k | 2012/05/12 17:13 | | 트랙백 | 덧글(0)

끝이 보인다.


옹색한 변명을 줄기차게 늘어놓는 상대 앞에서 아무런 코멘트를 하지 않고 뚱하게 바라만 보았다. 실은 만남 이전부터 할 말을 잃었고 변명을 들어주는 시점, 아니 마주한 순간부터 온라인 메신저나 모바일 인스턴트메신저처럼 대화를 차단하는 막 같은 것이 내 앞에 바리케이드를 쳤으면 좋겠다고. 그랬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상대의 우직함 내지는 우둔함에 익숙해진 탓에 그 이유가 타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지레짐작고 알았지만, 끝까지 귀 기울였다. 이해하고 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껄끄러움과 거추장스러운 것이 싫어 이대로 덮어버리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으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다름이고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무지함이다.

변명이란 이유 불문하고 구성 맞다. 처절하기까지 하였다.
바닥을 보이지 않길 바라는 염원에 가까운 바람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무시당했다.
대화 중에 끝을 보았고, 데미지는 예상보다 담담했다.



by NoiR-k | 2012/03/03 14:15 | 처음과 | 트랙백 | 덧글(0)

요즘 이렇다.


어리석다.
즐겁다. 어리석은 것이 즐겁기도 하고 즐거운 것이 어리석기도 하다.
이따금 죄책감이 물밀듯 몰려와 머리를 싸매고 눕는다.
음식을 보면 금세 잊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금세 녹는다.

취향이 없다.
색깔이 없다.
왔다갔다한다. 정신도 기분도. 무너지고 싶을 때는 무너진다. 재건하려 발버둥치지 않는다. 무너진 그대로 즐겁다.
많이 웃고 격하게 운다.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는 생활이 되어간다.

폼 잡지 않는다. 어깨가 내려와 있다. 자신감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자존감은 그냥 없다.

긴장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날 긴장하게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즐거운 것에 매 순간 감사한다. 감사한 데 어디에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천성에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by NoiR-k | 2012/02/26 22:24 | 처음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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